“서울대생은 군대에서 삽질도 잘한다더니”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서울대생 알바로 써 보니’라는 글을 게재되었습니다. 글쓴이는 “홀 서빙을 한번 꼭 해보고 싶었다고 찾아온 서울대생이 일을 잘하더라”라면서 “좋은 학교 다니는 학생 고용하면 실패 확률이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라고 전했습니다.
‘TV가 다 못 담았다’ 여배우 실물 느껴지는 근접 사진. JPG
이에 네티즌들은 서울대생이 참을성과 끈기 덕분에 공부를 잘한 것처럼 알바 역시 성실하게 잘 해낸 것이라는 이유를 들기도 했는데요. 서울대 출신이라고 해서 사업 수완까지 좋은 것은 아닌 걸까요? 사업에서 무려 40차례 이상 실패했다는 서울대생이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수석 합격한 이후 재수를 통해 서울대 불문과까지 합격한 주인공은 개그맨 서경석입니다. 대전 출신의 서경석은 어린 시절 건전지 도매업을 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가용이 있는 집이었고 3층 주택에 살면서 친구들을 초대하는 부잣집 도련님이었지요.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집은 경매처분을 당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아버지는 피신했고 어머니는 생활비를 버느라 남의 집 살이를 하는 바람에 서경석은 평소 ‘건전지집 막내아들’이라고 예뻐해 주던 동네 약사부부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부족함 없이 귀공자처럼 살아온 서경석은 더부살이를 하면서 처음으로 눈치를 보게 되었지요. 한 번은 집에 있는 라면이 먹고 싶어서 하루종일 생각만 하다가 약사부부의 아들인 형에게 끓여먹자고 졸랐는데, 형이 싫다고 화를 내는 바람에 결국 라면을 먹지 못하고 잠들면서 서러워서 울며 잠든 적도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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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가족이 다시 모인 이후에도 가난은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힘든 환경에서 서경석은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에 매진했고 가장 낮은 석차가 전교 4등 일 정도로 높은 성적을 유지했지요. 실제로 한 예능 프로를 통해 공개된 그의 성적표는 ‘ALL 수’로 도배되어 있었는데요. 이날 방송에서 서경석은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앉아만 있는 건 지양해야 한다”라며 “학력고사 세대라서 나만의 암기법을 만들어 절대 잊어버리지 않도록 외웠다”라고 공부비법을 전했습니다.
입시를 앞둔 고3 시절 서경석의 아버지는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습니다. “아빠는 너 대학 보낼 형편이 안된다”라며 “국가에서 등록금을 지원하는 육군사관학교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라는 제안이었지요. 이에 육사 50기에 수석 입학한 서경석은 당시 언론사로부터 사진 요청을 받고 플래카드까지 걸리며 전국적으로 유명 인사가 되었는데요. 막상 평생 군인 생활을 하겠다는 자신감이 없었던 탓에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자퇴 당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보며 “내년엔 더 큰 기쁨을 안겨드리겠다”라고 다짐한 서경석은 이후 3개월간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독서실에서 수능공부에 몰두해 서울대에 합격했습니다. 게다가 걱정하던 등록금 역시 부모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했지요. 과외를 통해 등록금 이상의 돈을 벌게 된 것입니다.
서울대생 과외 선생님은 원래도 인기가 높은 편이지만 서경석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인기강사였습니다. 보통 과외 강사들이 교재를 정해주고 해당 문제집의 풀이를 함께 해 나가는 것에 반해 서경석은 시중에 나온 교재들을 사서 각 교재에서 좋은 문제를 선별, 발췌해서 직접 프린트를 만들어 수업용 교재로 활용한 것이 학부모들의 신뢰를 산 것이지요. 덕분에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 성실하다고 소문난 서경석은 인천까지 과외 원정을 떠날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인기강사가 된 서경석은 등록금 이상의 돈을 벌게 되었고 과외를 위한 이동 시 기동력을 위해 소형차를 구입할 정도의 여력이 생겼습니다. 연예계 절친인 이윤석을 처음 만날 때도 과외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대해 이윤석은 “서경석은 대학생 신분이었는데 자가용을 타고 다니더라. 가죽 재킷까지 입어서 약간 오렌지족 김보성 느낌이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자신만의 꿈을 가질 여유 없이 늘 공부와 생계에만 매달려온 서경석은 서울대 불문과 3학년 재학 중 특별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15년간 계속된 학업에 대한 압박, 취업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고민하던 와중에 하숙집에서 TV를 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MBC 코미디언 공채 모집 공지에 원서를 넣은 것이지요. 원서를 넣을 당시만 해도 서경석은 “새로운 세계 구경하고 경험도 해 보자. 그다음 불문학자, 외교관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경험 삼아 도전한 제4기 MBC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서경석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서울대 선배인 김영희 PD가 연세대 출신인 이윤석과 콤비를 권유해 함께 시작한 코너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가 대박이 난 것이지요. 해당 코너에서 두 사람은 ‘지식인 분석 개그’라는 새로운 콘셉트의 개그를 선보였고 “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덕분에 각종 광고에 출연하고 음반까지 내면서 서경석은 아버지의 빚을 다 갚게 되었고 연이어 조혜련, 김효진과 함께 출연한 개그코너 ‘울엄마’까지 대박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개그맨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다만 데뷔한 1993년 신인상을 시작으로 96년 우수상, 97년 최우수상, 99년 대상까지 수상하면서 데뷔 이후 어려움 없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듯 보이는 서경석에게는 의외의 실패의 경험이 있는데요.
‘눈뜨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되었다’라는 말이 걸맞은 서경석은 대학생 신분으로 시작한 개그맨 활동이 대박을 치면서 하루아침에 큰돈을 벌어들였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96년 여의도의 한 증권사 직원을 만나 재테크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는 주식시장이 워낙 활황일 때라 투자금액은 순식간에 불어나 2억 5천만 원이 되었고 그 돈으로 첫 집을 구입한 서경석은 주식에 대한 자신감이 오만함으로 커져서 결국 1997년 이후 2억 5천 이상의 손해를 봤습니다.
이후에도 서경석은 본격적으로 사업과 투자에 도전했다가 무려 40여 차례나 실패를 맛봤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사업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을 법하지만 서경석은 오히려 “아버지의 사업 실패에 대한 기억을 바꿔보고 싶다”라는 의지가 생겼고 이를 실행에 옮겼는데요. 서경석이 도전한 첫 사업은 군 입대를 앞두고 친형과 함께 시작한 와인 삼겹살 식당. 당시 서경석은 연예인으로서의 자신의 인지도와 명성만 믿고 사업을 시작했고 그 결과 서경석이 군 입대를 하자마자 단 100일 만에 식당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한 번은 지인을 통해 대전에 아울렛이 생긴다는 정보를 듣고 아울렛 근처에 땅을 사기도 했는데, 말로 들은 정보만 믿고 직접 땅을 둘러보지도 않은 바람에 투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실패와 손해에도 서경석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업 성공 경험에 대한 의지가 더욱 강해졌지요.
그리고 2008년경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면서 사업과 투자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안목이나 감각만 있으면 된다고 믿은데 반해 직접 나서서 발로 뛰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처음에는 골프장 운영 실무를 맡고 있는 팀장이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서경석은 직접 영업시간 내내 가게에 앉아있으면서 사업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을 터득했습니다. 이후 서경석은 골프장 관리에 직접 나섰고 기계를 고치고 손님에게 음료를 나르는 것은 물론 발레파킹까지 하면서 운영이 나아졌습니다.
상암 MBC 지하에 중식당과 디저트 카페까지 총 3개 사업장을 운영하던 2017년 서경석은 중소기업 사장을 인터뷰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경제 관련 프로그램 ‘창업스타’와 ‘강소기업이 힘이다’를 진행한 공로로 중소기업중앙회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서경석은 단순히 방송진행자로서가 아니라 자영업을 운영 중인 사장의 입장에서 실제 중소기업의 고충과 경영담에 귀를 기울여왔고, “‘사장’이 많아져야 경제가 좋아진다”라는 생각으로 책을 엮어낸 것입니다.
당시 출간기념으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서경석은 “작은 식당을 해도 묘한 보람이 있다”라며 “내가 만든 공간에 내가 만든 시스템에 각기 다른 인생이 모여 식구가 됐구나, 그런 감격이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방송 출연료로 직원들 월급을 메워야 하는 힘든 상황에도 꾸준히 사업을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혼자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람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명감을 밝히기도 했지요.
2018년 11월 중식당과 카페를 정리하면서 스크린골프장 하나로 사업장을 축소한 서경석은 최근 유튜브채널 ‘서경석TV’ 운영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일자리를 창출하는 또 하나의 사업인 셈이지요.
한편 서경석은 매달 월급 날인 25일보다 조금 앞서 23일에 직원들에게 월급을 보내는데요. 그 돈이 혹 동생 등록금이나 아버지 병원비라고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과거 과외 강사를 하면서 학부모가 깜박했다며 과외비를 미루는 바람에 당장 하숙비조차 내기 어려워 난감했던 사정을 기억하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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