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아버지 대신 돈 벌기 위해 슈퍼모델대회 참가한 여고생의 현재

Follow Me

728x90
728x170

객관적으로 같은 수준의 가치라고 할지라도 사람마다 체감하는 정도는 다릅니다. 어렵고 힘들게 얻은 것일수록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돈도 사람도 내가 원하는 대로 곁에 두기까지 늘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는 오늘의 주인공은 그만큼 매사에 감사하고 간절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데요.

1994년 한국인 최초 베네통 모델이 된 홍진경

17살 어린 나이에 사회에 뛰어들어 고비마다 포기 대신 도전을 선택한 주인공은 방송인이자 사업가인 홍진경입니다.

문학소녀에서 슈퍼모델이 된 소녀 가장

 

코믹한 콘셉트로 예능 프로의 단골이 된 홍진경은 방송 이미지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즐긴 문학소녀였습니다. 최근 홍진경의 어머니가 직접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학창 시절 홍진경은 늘 책을 읽는 것은 물론 문학반에 들어서 작문과 작시를 즐겼습니다. 때문에 홍진경의 어머니는 딸이 커서 작가가 되리라고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유튜브채널_공부왕찐천재 홍진경

관련 학업을 위해 유학까지 계획한 홍진경은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서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때마침 열린 슈퍼모델대회에 출전한 것. 만 16세 최연소 나이로 출전한 홍진경은 갑작스레 출전한 대회에서 다소 어색한 런웨이 워킹을 선보였지만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자신의 끼를 선보인 끝에 '베스트포즈상'을 수상했습니다.

 

1993년 슈퍼모델대회 출전 모습

덕분에 홍진경은 고1부터 모델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아버지 병원비, 가족생활비, 동생 학비 등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었습니다. 데뷔 2년이 지날 즈음 모델 활동으로 벌이가 뜸해져서 어려움을 겪자 개그우먼 이영자가 "코미디언이라도 해 보겠냐"라고 권유해서 코미디 연기에 도전했는데요. 당시 이영자가 적극 추천해 준 덕분에 '금촌댁네 사람들' 등 코미디 프로에 출연 기회를 얻긴 했으나 결국 스스로 잘 해내서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홍진경은 절박한 마음으로 방송에 임했습니다.

 

코미디 프로 영자의전성시대 출연 모습

홍진경은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안 계시면 오라이"라는 자신의 유행어가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생계를 위해 맡은 역할을 해냈고 고작 고등학생의 나이로 방송국에서 "더 이상 안 나와도 된다"라는 냉담한 거절까지 들어가면서 버텼습니다. 당시에 대해 홍진경은 "어린애가 혼자 고군분투하고 상처받은 아이가 보인다"면서 이른 나이에 짊어진 부담이 심했음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노컷뉴스

자신의 꿈이 아닌 소녀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뛰어든 방송활동이지만 늘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홍진경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호감을 얻었습니다. 고 최진실을 비롯해 이영자, 엄정화, 이소라 등과 함께 일명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면서 방송가를 주름잡는 인기 방송인의 길을 걸었지요.

3개월 쫒아다녀 쟁취한 남편

홍진경이 자신의 방송활동 은인으로 꼽는 고 최진실은 현재의 남편을 소개해 주기도 했는데요. 사립학교 재단 은구학원 이사장의 아들인 김정우 씨를 처음 본 순간 홍진경은 완전히 반해서 첫날 헤어지기 직전 차에서 먼저 키스를 했습니다. 반면 남편 김정우 씨는 홍진경의 저돌적인 키스에 당황해서 연락을 피했고, 이후 홍진경은 3개월 넘게 남편을 쫓아다녔다고.

 

 

남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남편 초등학교 동창 모임까지 가서 사회까지 봤다는 홍진경은 어렵게 남편의 마음을 얻어 교제를 시작했고 그보다 더 어렵게 시어머니의 결혼 승낙을 받아서 2003년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다만 결혼을 앞두고 앞서 가족생활비를 보태고 사기까지 당하는 바람에 가진 전 재산이 2천만 원밖에 되지 않아 난감했는데요.

 

미안하고 창피한 마음 때문에 남편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하고 고민하던 중에 상황이 어렵다면서 급하게 돈을 빌려달라는 친척에게 남은 2천만 원까지 모두 빌려준 홍진경은 '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 지인들이 결혼 선물로 혼수를 하나씩 마련해 준 덕분에 무사히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지요.

300만 원 자본으로 매출 300억 낸 김치사업

재단 이사장의 아들이자 기업인인 남편 김정우 씨의 스펙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남편 돈 보고 결혼한 것 아니냐"라는 시기 섞인 추측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홍진경은 "내가 더 번다"라고 당당히 반박했는데요. 실제로 홍진경은 2003년 시작한 김치사업으로 현재 수백억 대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입니다.

 

 

결혼 직후 모델 활동에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해외 진출에 도전해보겠다며 뉴욕으로 떠난 홍진경은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으나 직접 부딪쳐보고 도전하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와 함께 김치사업에 도전했지요. 어린 시절부터 동네 분들이 돈 주고 담가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맛있기로 소문난 엄마의 김치를 실제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시킨 것.

초기 자본 3백만 원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만든 홍진경은 공장이나 사무실이 따로 없어서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팔았습니다. 어머니가 집에서 보조하는 직원 2명과 함께 배추김치와 총각김치를 만들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방식. 사업 초기에는 하루 10봉지 팔기도 힘들었지만 뚝심 있게 이어간 끝에 김치 맛이 입소문을 타자 홈쇼핑까지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동료 연예인들의 인터뷰 영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고 최진실에게 술을 마시고 어렵게 전화를 걸어서 말을 꺼내자 최진실은 단번에 "너 카메라 들고 빨리 와. 그 말 꺼내려고 그렇게 망설였니"라고 반문했다고.

동료들의 도움과 홍진경의 진정성이 만나 김치사업은 승승장구했습니다. 홈쇼핑에서 대히트를 치면서 매출액은 2018년 기준 300억 원을 넘어섰고 현재 김치뿐만 아니라 만두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결혼에 골인하고 사업까지 시작하면서 일과 사랑 모두 성공적이던 그 시기, 홍진경은 난임이라는 또 다른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5대 독자인 남편은 되려 "아기를 싫어한다"라며 괜찮다고 했지만 홍진경은 포기하지 않고 한 달 내내 주사를 맞고 이식 시술을 하는 시험관 시술 과정을 6년간 이어갔지요. 덕분에 홍진경은 7년 만에 귀한 딸 라엘이를 얻었습니다.

2010년 12월 딸을 출산하며 힘든 시간이 끝난 줄 알았던 홍진경은 2014년 3월 난소암을 발견하면서 또 한 번의 고단을 겪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딸을 두고 아픈 것조차 아이에게 미안했던 홍진경은 악착같이 치료를 받으면서 투병을 견뎠는데요. 당시에 대해 남편 김정우 씨는 "치료받으면서도 '난 거의 다 나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 낫고 어디 갈지 계획 짜자'라고 말해줘서 같이 있는 사람들한테도 편안하게 힘을 줬다"라고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instagram@jinkyunghong

암 투병으로 인해 탈모를 겪은 이후 짧게 자른 머리가 트레이드마크가 된 홍진경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호감형 연예인입니다. 늘 밝은 모습으로 방송에 나서는 홍진경을 보고 더욱 공감이 가는 이유는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보여주는 밝은 에너지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tvN 유퀴즈온더블럭

최근 딸 라엘 양과 함께 예능 프로에 출연한 홍진경은 교육 관련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딸에게 직접 가르쳐주기 위해서"라며 일찍 방송활동을 시작하는 바람에 학업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딸의 교육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는데요. 수학 문제 풀이는 못해주더라도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로 임하는 엄마의 모습 자체가 충분히 교육적이지 않나 싶네요.

728x90
그리드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